앞으로의 세계, 3가지 관점
낙관적 관점
인류 역사에서 기술이 진보할 때마다 반복된 패턴이 있다. 단순 노동이 자동화되면, 인간은 더 인간다운 일로 이동했다. 농업 자동화가 도시 문명을 만들었고, 산업화가 서비스업과 창작 산업을 키웠다. AI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실행의 장벽이 사라지면, 지금까지 먹고 살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했던 사람들이 진짜 하고 싶은 것에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된다. 개발을 몰라서 아이디어를 포기했던 사람이 제품을 만들고, 자본이 없어서 시작 못 했던 사람이 시장에 진입한다. 진입장벽이 낮아진다는 건 결국 더 다양한 사람들의 아이디어가 세상에 나온다는 뜻이다.
공급이 폭발하면 희소가치가 이동한다. 기술이 평등해진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자본은 열정, 진정성, 그리고 특정 집단에 대한 깊은 이해가 된다. 오타쿠가 오타쿠를 위한 서비스를 만들고, 독서광이 독서 문화를 설계하는 세상. 어떻게 보면 인류가 처음으로 잘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이 일치하는 방향으로 일을 재편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이다.
비관적 관점
그러나 그 과실이 고르게 분배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AI 인프라 자체 — 컴퓨팅 파워, 데이터센터, 핵심 모델 — 는 결국 소수의 빅테크가 소유하게 된다. 모두가 AI를 쓰는 세상이 되면, 모두가 그 몇 개 회사의 인프라 위에서 경쟁하는 구조가 된다. 앱스토어가 등장했을 때 개발자들이 열광했지만, 결국 30% 수수료를 내며 애플과 구글의 정책에 종속된 것처럼. AI 시대의 수수료는 더 교묘하고 더 깊은 레이어에 숨어있을 것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사회적 연결이다. AI가 인간적 감성을 모사하는 수준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실제 인간 관계에 투자하는 피로를 점점 회피하게 된다. 인간 관계는 불편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상처도 준다. AI는 항상 친절하고 맞장구를 쳐주고 상처를 주지 않는다. 단기적으로는 편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이 진짜 관계를 맺는 능력 자체가 퇴화할 수 있다.
낙관론은 항상 성공한 케이스만 보는 경향이 있다. 공급 과잉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수천 개의 시도들,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사람들은 통계 뒤에 가려진다. 모두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은, 동시에 모두가 경쟁에 내몰린다는 말이기도 하다.
중립적 관점
사실 이게 전혀 새로운 공포가 아니라는 것부터 짚어야 한다.
산업혁명 때 러다이트 운동이 있었다.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직조 기계를 부쉈던 사람들. 결과적으로 일자리의 형태는 바뀌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인터넷이 나왔을 때도 신문사는 망할 거라고 했고, 실제로 많은 신문사가 망했지만 저널리즘은 사라지지 않았다. 형태가 바뀐 것이다.
AI도 비슷한 궤적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생각보다 많이 바뀌겠지만, 생각보다 인간은 적응한다. 사회는 항상 충격을 흡수하고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왔다. 다만 그 과정에서 항상 시간이 걸렸고, 그 시간 동안 고통받는 사람들은 실재했다. 낙관론도 비관론도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내 생각
세 관점이 틀린 게 아니라, 셋 다 동시에 일어날 것이다. 같은 시대에 낙관적 미래를 사는 사람과 비관적 미래를 사는 사람이 공존하는 것이다. 이건 AI 시대만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격변기에 반복된 현상이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흥미롭다고 보는 지점은 따로 있다.
지금까지 인류의 경쟁은 주로 더 열심히, 더 빠르게의 싸움이었다. 더 오래 공부하고, 더 많이 일하고, 더 빨리 실행하는 사람이 이겼다. 그런데 AI가 실행 속도를 평등하게 만들어버리면 경쟁의 축이 완전히 바뀐다. 무엇을 보느냐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어떤 문제가 진짜 문제인지, 어떤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어떤 감정이 지금 시대에 결핍되어 있는지 — 이걸 읽는 능력은 열심히 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경험에서 오고, 관찰에서 오고,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온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의 세계가 더 인간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유리한 세상이 될 거라고 본다. 역설적으로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인문학적 감각, 공감 능력,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가 가장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결국 이 모든 얘기의 끝은 하나다. 기술을 어떻게 쓰느냐가 아니라, 기술로 누구의 어떤 문제를 풀려고 하느냐. 그 질문을 진지하게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격차가, AI 시대에 가장 크게 벌어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