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공급 과잉 시대, 희소가치는 어디로 가는가

Hyunjun By Hyunjun 2026년 02월 19일

요즘 “에이전트로 하루만에 앱 만들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과장이 섞여있긴 해도, 개발의 진입장벽이 낮아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프로그램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 사업가 입장에서 점점 불리해지는 거 아닌가?


공급 과잉이 오히려 승자독식을 강화한다

공급이 많아진다고 시장이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는 반대를 보여준다. DAW가 보급되고 누구나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됐을 때, 상위 1%가 가져가는 스트리밍 수익 비율은 더 올라갔다. 공급 폭발은 검증된 것의 희소성을 높인다.

“내가 직접 만들어볼까”라는 심리도 실제 전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MVP는 뚝딱 나올 수 있어도, 유지보수·보안·고객 지원을 혼자 감당하다 보면 결국 포기하고 기존 서비스로 돌아가게 된다. 이 심리는 WordPress 때도, 노코드 툴 때도 있었고, 그때마다 SaaS 시장은 오히려 성장했다.


AI가 기획과 마케팅까지 완벽히 해준다면?

반박이 꽤 무너지는 전제이긴 하다. 근데 그 전제 자체를 뜯어봐야 한다.

완벽한 마케팅의 본질은 신뢰와 관계다. AI가 카피를 완벽하게 써줘도, “누가 이걸 왜 만들었나”에 대한 진정성은 복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AI 생성 콘텐츠가 범람할수록 그 진정성의 희소가치가 폭등한다.

더 나아가, 그 수준의 AI가 온다면 이건 사업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 변호사, 컨설턴트 — 모든 지식 노동의 경제적 가치가 재편되는 이야기다. 그 세계에서 “사업하기 유리하냐 불리하냐”를 논하는 건 의미가 없어지고, 진짜 싸움은 자본과 데이터와 인프라를 누가 통제하냐로 이동한다.


공급이 폭발하면, 반드시 다른 곳의 희소가치가 폭등한다

일상에서 이미 이 패턴은 반복되고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가 보급되자 필름 사진작가의 가치가 올라갔다. 숏폼 콘텐츠가 넘쳐나자 롱폼 뉴스레터에 사람들이 돈을 내기 시작했다. 카페가 골목마다 생기자 30년 된 동네 빵집이 SNS 성지가 됐다. 넷플릭스로 볼 게 넘쳐나자 IMAX 경험에 더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배달앱으로 음식 접근성이 극대화되자, 예약 3개월짜리 오마카세가 생겨났다.

패턴이 보인다. 공급이 폭발하면 항상 그 공급이 채울 수 없는 결핍이 선명해진다.


이건 반발심리가 아니라 인간의 욕구 구조다

단순한 청개구리 심리가 아니다. 마슬로의 욕구 위계처럼, 어떤 레벨의 욕구가 쉽게 충족되는 순간 인간은 자동으로 다음 레벨의 결핍을 찾아 나선다.

배고픔이 해결되면 맛을 찾고, 맛이 해결되면 분위기를 찾고, 분위기가 해결되면 셰프의 철학을 찾는다. AI가 실행을 다 해주는 세상이 오면, 인간이 가치를 두는 건 자동으로 “AI가 줄 수 없는 것”으로 이동한다. 진정성이든, 아날로그 감성이든, 특정 인간의 고유한 판단이든.

희소가치는 기술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욕구 구조가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욕구 구조는 수천 년째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에이전트 시대에 뭘 만들어야 하는가

에이전트로 만든 앱들을 예를들면 계산기, 게임, 각종 유틸리티 류가 많다. 기술 자체가 목적인 것들이다. 근데 기술의 진입장벽이 사라진 세상에서 기능은 더 이상 경쟁력이 아니다. 기능은 복제된다.

복제되지 않는 건 사람의 집합이다.

오타쿠 커뮤니티, 독서 커뮤니티, 특정 취향을 공유하는 소규모 집단 — 이런 커뮤니티성을 가진 앱이 앞으로 더 강력해질 이유가 여기 있다. 에이전트로 커뮤니티 앱을 뚝딱 만들 수는 있어도, 거기 모인 사람들과 그들이 쌓은 관계, 문화, 내부 언어는 만들 수 없다. 네트워크 효과는 AI가 생성할 수 없는 거의 유일한 자산이다.

단, 함정이 있다. 커뮤니티 앱은 기술이 제일 쉽고 사람 모으는 게 제일 어려운 장르다. 기술 진입장벽이 사라지면 결국 승자는 개발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특정 집단 안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된다.


결론적으로, 에이전트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무엇을 만드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해, 그리고 누구와 함께 만드냐다. 기술이 쉬워질수록 인간적인 요소의 값이 올라간다. 이 흐름을 먼저 읽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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